종이 없는 행정

종이 없는 행정 도입이 어려운 분야는 어디인가?

story89431 2025. 7. 14. 10:36

대한민국은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국가 전략으로 설정하고, 행정의 전자화 및 종이 없는 행정 실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자결재, 전자문서, 전자증명서, 모바일 민원 시스템 등 다양한 기술이 공공행정에 도입되면서, 국민은 더 이상 행정기관에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많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모든 분야에 균등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몇몇 행정 영역에서는 여전히 종이 문서가 기본 매체로 사용되며, 디지털 전환이 제한적으로만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기술적 문제뿐 아니라 제도적, 법적, 사회문화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종이 없는 행정이 쉽지 않은 분야들이 존재한다. 이 글에서는 종이 없는 행정 도입이 특히 어려운 대표적인 분야들을 분석하고, 왜 그런 제약이 있는지, 어떤 방식의 보완이 필요한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종이 없는 행정 도입이 힘든 분야

 

종이 없는 행정 도입이 어려운 대표적인 분야

첫 번째로 종이 없는 행정이 어려운 대표적 분야는 보안 민감 문서 및 고위험군 정보를 다루는 영역이다. 예를 들어, 군사, 안보, 수사, 정보기관 관련 행정은 문서 자체가 고도의 보안을 요구하기 때문에, 종이로 출력하여 제한된 인원만 열람하도록 관리하는 방식이 여전히 유지된다.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문서는 전자 유통 시 사이버 해킹, 유출 사고 등의 위험을 완전히 차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많은 기관이 ‘물리적 문서 보관’을 병행하는 이중 시스템을 선택한다.

두 번째는 대면 행정 중심의 현장 업무다. 특히 복지, 보건, 교육, 재난 등과 관련된 현장 중심 업무에서는 민원인의 디지털 역량, 접근성, 실제 상황 등을 고려하여 여전히 종이문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긴급복지 신청, 기초생활보장 서류, 학교 현장생활기록부, 보건소 진료기록지, 노인복지시설 상담서류 등은 담당 공무원이 현장에서 직접 종이 문서로 작성하거나 서명받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는 디지털 단말기 부족, 인터넷 미지원 환경, 서명 거부 등 현장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해야 하는 특수성 때문이다.

세 번째는 법적 원본 제출이 요구되는 분야다. 등기소, 법원, 공증 사무소 등 일부 사법·행정기관은 여전히 서면 원본 문서의 제출을 요구하는 절차가 존재한다. 부동산 등기, 민원 소송, 가족관계등록, 유언장, 유언공증 등의 절차는 전자문서의 법적 효력이 100%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신청인이나 담당자가 종이 문서를 직접 인쇄해 제출해야 한다. 법률 개정이 더디거나, 시스템 간 연계가 불충분할 경우 전자화된 문서를 다시 출력하여 제출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도 발생한다.

 

종이 없는 행정에 대한 제도 및 기술적 한계와 디지털 소외 문제

디지털 행정이 정착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제도와 기술이 아직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자문서의 장기 보존 체계가 법적으로 완전히 자리 잡지 않은 상태에서는 종이 문서를 병행하여 보관해야 하는 행정기관이 많다. 또한 전자서명법, 전자문서법, 공공기록물관리법 등 주요 법령 간 적용 범위의 차이가 있어, 전자문서를 법적 증거로 활용하는 데 제한이 생기기도 한다.

기술 측면에서도 클라우드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각 기관 시스템 간 연계가 되지 않아 업무가 전자화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특히 소규모 지자체나 농어촌 지역의 행정기관은 전자결재, 클라우드 저장, 모바일 민원 처리 기능이 제한되어 있어 종이 문서 기반으로 업무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더불어 디지털 소외계층의 존재도 종이 없는 행정 도입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고령층, 장애인, 외국인 주민,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일부 계층은 모바일 앱, 전자문서 열람 시스템, 전자서명 인증에 익숙하지 않아 종이 기반의 서류가 여전히 필요하다. 정부는 디지털 포용 정책을 통해 이 문제를 보완하려 하고 있지만, 단기간에 모든 계층을 전자화된 행정 절차에 편입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결국 일부 분야에서는 당분간 종이 문서를 병행할 수밖에 없는 행정 현실이 존재하는 것이다.

 

종이 없는 행정을 향한 과제와 병행 체계 구축의 필요성

종이 없는 행정을 전면적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기술 도입만으로는 부족하다. 법률 정비, 시스템 통합, 현장 맞춤형 설계, 디지털 소외계층 보호 등 복합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우선 정부는 전자문서의 법적 효력을 더욱 강화하고, 전자문서 장기보존 체계와 증거 효력 인정 기준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또한 기관 간 데이터 연계와 시스템 호환성을 높여 중복된 종이 문서 출력 절차를 제거해야 한다.

현장 적용 측면에서는 일괄적인 전자화 강요보다는 '유연한 병행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종이와 전자문서를 병행하면서 점진적으로 종이 사용을 줄이는 방식이 현장 저항 없이 정착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전자서명 도입이 어려운 고령자 민원인의 경우에는 행정도우미가 대리 입력하거나, 종이 서명을 스캔 후 시스템에 업로드하는 ‘하이브리드 방식’도 가능하다.

또한 디지털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접근성 높은 전자문서 열람 시스템, 다국어 지원, 음성 안내 서비스 등은 행정 디지털화의 사회적 신뢰를 높이는 필수 요소다. 종이 없는 행정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선택이지만, 일부 예외적 분야에 대해선 ‘종이 문서가 필요한 이유’를 인정하고 보완하는 유연성이 더 중요하다. 모든 분야가 같은 속도로 변할 수는 없다. 중요한 건 속도보다 방향이고, 기술보다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