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환은 단순한 기술의 변화가 아니다. 이는 행정 시스템, 조직 구조, 서비스 방식,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공무원의 역량까지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전환점이다. 과거에는 법령 이해력, 정책 수립 능력, 문서 작성력 등이 행정 공무원의 핵심 역량이었다면, 오늘날에는 디지털 기술에 대한 이해와 활용 능력, 데이터 분석 역량, 변화 관리 능력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정부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목표로 삼고 있으며, 이에 따라 공공 서비스는 점점 자동화되고 있고, AI 기반 민원 분석, 전자결재, 클라우드 문서 보관, 모바일 민원 처리 시스템 등 다양한 기술 기반 행정 플랫폼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행정 공무원은 단순한 행정 절차의 집행자에서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정책을 기획하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문제를 분석하고, 국민 중심의 서비스를 설계할 수 있는 '디지털 행정 전문가'로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디지털 전환 시대에 공무원의 역할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어떤 역량이 요구되는지, 실제 행정 현장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종이 없는 행정을 위한 디지털 전환이 요구하는 새로운 공무원 역량 구조
디지털 기술이 행정에 본격적으로 적용되면서 공무원이 갖추어야 할 핵심 역량 역시 기술 활용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첫째는 디지털 리터러시다. 이는 단순한 문서작성 능력이 아니라, 전자문서 시스템, 클라우드 기반 협업 도구, 온라인 회의 시스템 등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실무 역량을 의미한다. 전자결재, 원격 근무, 모바일 행정 등 일상적인 업무 수행에서 디지털 도구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하며, 보안 인식과 개인정보 보호 의식도 함께 요구된다.
둘째는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능력이다. 행정은 이제 감이나 선례에 의존하지 않는다. 지역 주민의 요구, 민원 패턴, 예산 사용 내역, 정책 효과 분석 등 모든 것이 데이터 기반으로 판단되고 평가된다. 따라서 엑셀을 넘어서 통계 툴, 데이터 시각화 도구, AI 기반 분석 툴 등을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해졌다. 특히 기획이나 정책 담당 공무원은 데이터를 읽고 해석해 정책 방향을 잡는 분석 능력이 필수이다.
셋째는 디지털 협업과 서비스 설계 능력이다. 다양한 부서와 외부기관, 민간 기업, 시민 사회와 함께 협업하고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서비스를 공동으로 설계하는 능력이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행정절차의 처리자가 아닌, 사용자 경험(UX), 서비스 흐름(Service Flow)을 고려한 정책 설계자로서의 역할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변화 속도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학습 민첩성(learning agility) 역시 공무원에게 중요한 덕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행정현장에서 나타난 변화와 교육 제도 정비
이러한 디지털 역량 요구는 실제 공공기관 현장에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특별시와 부산시청은 '디지털 전담 TF'를 조직하여 부서 간 협업 체계와 디지털 역량 진단 도구를 운영하고 있으며, 공무원 스스로 디지털 도구를 활용해 민원 대응 속도와 품질을 높이도록 하고 있다.
또한 행정안전부는 '디지털 공무원 양성 종합계획'을 수립해, 공무원을 대상으로 AI·빅데이터 기초 과정, 디지털 플랫폼 활용 교육, 정보보안 실무 교육을 정기적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이를 승진 평가나 역량평가 항목에도 포함시키고 있다. 한국지방자치연구원은 전국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디지털 리터러시 수준 진단 평가도구를 개발해 보급하고 있으며, 교육부 또한 국립대학의 행정 직원에게 전자문서, 디지털 아카이빙, 클라우드 기반 업무처리 교육을 실시 중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교육을 넘어서 공무원 인사제도의 변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디지털 기술과 정책기획 능력을 갖춘 복합형 인재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디지털 전담직군 도입, 민간 전문가의 공공영역 유입, 디지털 특화 채용 확대 등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공공부문이 이제 단순한 규제와 관리 중심의 조직에서 벗어나, 서비스 중심, 문제 해결 중심의 유연한 조직문화로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
종이 없는 행정을 향한 향후 과제와 디지털 시대 공무원의 미래
디지털 전환이 본격화될수록, 공무원의 역할은 더욱 전략적이고 창의적인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첫째는 세대 간 디지털 격차 문제다. 일부 중·고참 공무원은 디지털 도구에 익숙하지 않거나 변화에 저항감을 가지는 경우도 있으며, 이는 행정 현장의 혁신 속도를 저해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맞춤형 교육 설계와 디지털 멘토링 프로그램이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둘째는 기술에만 집중된 디지털화의 부작용이다. 자동화와 효율성 중심의 기술 도입이 오히려 공공성, 형평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고려를 소홀히 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공무원은 기술적 역량과 함께 공익적 가치, 행정윤리, 사회적 책임에 대한 감수성을 함께 갖춰야 한다.
셋째는 디지털 행정의 지속가능성 확보다. 단기적 프로젝트 중심의 시스템 구축보다는, 장기적으로 유지·보수 가능한 구조와 예산, 조직 체계를 함께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공무원이 단순 사용자가 아니라, 디지털 행정 시스템의 설계자이자 운영자로서 참여할 수 있는 권한과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결국 디지털 전환 시대의 행정 공무원은 더 이상 과거의 방식으로는 효율적인 행정을 수행할 수 없다. 디지털 기술을 이해하고, 데이터를 활용하며, 국민과 공감하고, 유연하게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공무원이야말로 미래 행정의 핵심 인재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해 공무원 조직과 인사체계를 적극적으로 혁신해 나가야 하며, 이는 곧 국민이 체감하는 공공서비스의 질 향상으로 연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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