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없는 행정

공공기관의 종이 없는 회의 문화 : 전자회의 시스템 정착기

story89431 2025. 7. 4. 12:28

과거 공공기관의 회의실 풍경을 떠올려보면, 회의용 인쇄자료, 안건지, 관련 공문서 등 수십 장의 종이 문서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장면이 익숙하다. 회의를 준비하는 행정 담당자는 보고서를 출력하고 복사해 참석자 수만큼 정리하고, 회의가 끝난 뒤엔 모두 다시 수거하거나 폐기해야 했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이 본격화되면서 이러한 회의 문화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특히 ‘종이 없는 행정’을 전면 추진 중인 공공기관에서는 회의 문서 역시 종이 대신 전자문서 기반의 회의 시스템, 즉 전자회의 시스템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히 종이를 없애는 차원을 넘어, 회의 준비와 진행, 사후 정리까지 모든 프로세스를 디지털로 전환하는 구조적 변화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환경보호, 행정 효율성, 정보 보안, 기록의 영속성 등을 이유로 전자회의 시스템을 적극 도입하고 있으며, 실제로 각종 위원회, 간부회의, 정책조정회의 등이 태블릿과 전자결재 시스템을 통해 종이 없이 운영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공공기관이 어떻게 종이 없는 회의 문화를 정착시켜 왔는지를 분석하고, 실제 사례와 성과, 그리고 향후 발전 방향을 종합적으로 살펴본다.

종이 없는 회의 문화

 

종이 없는 회의 문화를 위한 전자회의 시스템의 구성과 운영 방식

전자회의 시스템은 회의 준비, 회의 진행, 회의 후 정리까지의 전 과정을 디지털 환경에서 관리하는 통합 솔루션이다. 먼저 회의 담당자는 회의 일정과 안건, 자료를 전자문서 형태로 업로드하고, 참석자들에게 시스템을 통해 알림을 전송한다. 참석자들은 개인 노트북, 태블릿PC, 또는 회의실 전용 전자회의 단말기를 통해 자료를 사전 열람할 수 있으며, 회의 중에는 실시간으로 자료를 확인하거나 메모, 의견 작성이 가능하다. 회의록도 수기로 작성하지 않고, 자동 녹음 기반 회의록 작성 시스템 또는 실시간 입력 방식을 통해 디지털 문서로 저장된다. 대표적인 공공 전자회의 시스템으로는 온-나라 회의시스템, 협업 포털 시스템, 공공기관별 전용 플랫폼이 있으며, 일부 기관은 클라우드 기반 회의 플랫폼과 전자결재 시스템을 연계해 회의 안건이 결재와 바로 연결되도록 설계하고 있다. 특히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서울시청, 경기도청 등은 전자회의 도입률이 매우 높은 기관으로, 모든 내부 회의는 사전 출력 없이 진행된다. 또한 일부 지자체는 회의 자료를 스마트패드에 자동 배포하고, 회의 후에는 저장 기간이 만료되면 자동 폐기되어 보안성도 크게 강화되었다. 이처럼 전자회의 시스템은 종이 절감 외에도 회의의 사전 준비 효율화, 정보 접근성 향상, 보안 강화 등 다양한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전자회의 문화로 인한 종이 절감 이상의 행정 혁신

전자회의 시스템이 공공기관에 정착되면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단연 업무 효율성과 자원 절감이다. 기존에는 회의 한 건당 수십~수백 장의 자료를 출력해 배포해야 했고, 특히 회의 안건이 변경될 경우 다시 인쇄해야 하는 비효율이 발생했다. 하지만 전자회의 도입 이후에는 안건 수정이 실시간으로 반영되고, 자료 재배포가 즉시 가능해졌다. 서울특별시는 2022년 기준 전자회의 시스템 도입 후 연간 약 450만 장 이상의 종이를 절감했으며, 이에 따른 인쇄비·인건비 등 간접비용을 연간 수억 원 규모로 절감했다고 발표했다. 더불어 회의 자료의 사전 공유가 용이해지면서 참석자들이 회의 내용에 더 깊이 몰입하고 생산성 있는 토론을 진행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되었다. 보안 측면에서도 전자회의는 강력한 장점을 갖는다. 종이 회의자료는 분실 위험이 있지만, 전자자료는 열람 권한이 부여된 사용자만 접근 가능하고, 이력 추적 기능을 통해 문서 열람·수정·삭제 기록을 모두 추적할 수 있다. 또한 회의 결과는 자동 저장되어 필요 시 손쉽게 조회하거나 정책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행정 조직 전반의 회의 문화와 일하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으며, 종이 없는 회의는 공공부문뿐만 아니라 민간기업, 대학, 공기업 등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종이 없는 진짜 ‘스마트 회의’로 나아가기 위한 조건

전자회의 시스템이 공공기관에 확산되었지만, 이 제도가 완전히 정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가 남아 있다. 첫 번째는 기관 간 시스템 호환성의 부족이다. 일부 기관은 자체 플랫폼을 운영 중인데, 회의 자료의 상호 공유나 외부기관 회의 시 연동이 되지 않아 불편을 초래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범정부 통합 전자회의 플랫폼 구축 로드맵을 마련하고 있으며, API 연동을 통한 시스템 통합을 추진 중이다. 두 번째는 디지털 접근성 강화와 사용자 교육이다. 중장년층 공무원이나 정보취약계층은 아직 전자회의 시스템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과 사용자 친화적 UI 설계가 필요하다. 세 번째는 보안 문제와 데이터 주권 확보다. 클라우드 기반 시스템이 확대되면서 데이터 외부 저장과 해외 서버 사용 이슈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필요하다. 향후 전자회의 시스템은 단순한 문서 열람 도구를 넘어서, AI 기반 회의 요약, 발언자 자동 기록, 회의 중 투표 기능, 실시간 데이터 시각화 기능 등 ‘스마트 회의 플랫폼’으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종이 없는 회의는 단순히 자료를 전자화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행정의 의사결정 구조, 협업 방식, 기록 관리 체계 전반을 혁신하는 출발점이며, 회의 문화 자체를 더 똑똑하게 바꾸는 진정한 디지털 전환의 실험대라 할 수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기술 도입 그 이상으로, 모든 회의 참여자가 이 시스템을 신뢰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환경 조성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