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없는 행정

종이 없는 행정은 탄소중립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story89431 2025. 7. 5. 20:01

‘디지털 행정’, ‘전자문서’, ‘모바일 민원’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종이 없는 행정 시스템을 정책 기조로 삼고, 다양한 공공기관과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전자결재, 전자문서 보관, 전자계약, 전자회의 등 각종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중요한 전략 중 하나다. 특히 최근에는 ‘탄소중립(Net Zero)’이라는 키워드와 맞물려, 종이 없는 행정이 단지 편리함이나 비용 절감 수준을 넘어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국가 정책의 일환으로 평가받고 있다.

종이 없는 행정과 탄소중립

 

탄소중립은 국가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흡수 또는 제거하는 방식으로 총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개념이다. 많은 사람들은 탄소중립과 종이 없는 행정이 직접적으로 무슨 관련이 있을지 의문을 갖는다. 그러나 종이의 생산, 유통, 사용, 폐기까지의 전 과정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와 자원을 소모하고 탄소를 배출한다. 이 글에서는 종이 없는 행정이 어떻게 탄소중립 목표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실제 수치와 사례를 통해 디지털 전환이 환경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입증해본다.

종이의 생산과 사용,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A4 용지 한 장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자원은 생각보다 많다. 목재 펄프를 추출하고, 이를 가공하고, 운송하고, 잉크로 인쇄하고, 쓰레기로 버려 처리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온실가스는 다단계로 배출된다. 국제환경단체 WWF(세계자연기금)에 따르면, A4용지 1장을 생산하는 데 평균 7g의 CO₂가 발생하며, 인쇄와 폐기까지 포함할 경우 그 수치는 10g을 넘긴다. 대한민국 중앙부처, 지자체, 공공기관에서 연간 사용하는 종이의 양은 약 30억 장 이상으로 추산되며, 이를 단순 계산하면 약 30,000톤 이상의 CO₂를 종이 사용만으로 배출하고 있는 셈이다. 종이 절감은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이산화탄소 감축 효과가 매우 큰 환경 정책이다. 더욱이 종이 사용을 줄이기 위해 벌목이 감소하면, 산림 탄소흡수원의 보존 효과도 함께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산림청은 “종이 사용량 1톤 감축 시 약 17그루의 나무가 보호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는 행정기관뿐 아니라 기업, 학교, 병원, 공공도서관 등 모든 사회 구성원이 종이 사용을 줄이면 직접적인 탄소 저감 효과를 일으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보면 종이 없는 행정은 단지 디지털 기술의 산물이 아니라, 탄소중립을 위한 실질적 실천 수단임을 알 수 있다.

종이 없는 행정의 탄소저감 효과와 실제 적용 사례

대한민국 정부는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공공부문부터 솔선수범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행정안전부는 각 중앙부처와 지자체에 종이 문서 사용 절감 목표를 설정하도록 하고, 전자결재, 전자공문, 전자문서 보관소, 전자회의 시스템의 전면 도입을 독려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청은 2023년 한 해 동안 전자결재 시스템을 통해 약 5,400만 장의 종이 문서 사용을 절감했으며, 이에 따른 탄소 저감 효과는 약 5,400톤으로 추산되었다. 경기도 역시 모바일 회의자료 시스템을 도입해 연간 약 1,800만 장의 출력물을 줄였고, 세종시 행정기관은 전자문서 저장 시스템을 클라우드로 통합하면서 문서 운송 및 보관에 필요한 에너지까지 감축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공공부문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업들도 전자계약 시스템, 전자세금계산서, 전자문서 관리시스템(EDMS)을 도입하면서 종이 사용량을 크게 줄이고 있으며, ESG 경영의 일환으로 탄소감축 보고서에 종이 절감 성과를 포함시키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특히 전자문서와 전자서명의 법적 효력이 확립되면서, 종이 문서 없이도 계약과 행정처리가 가능해졌고, 이로 인한 탄소 감축 효과는 점점 누적되고 있다. 이는 곧 디지털 전환이 단순한 기술혁신을 넘어서 환경 지속 가능성 확보를 위한 국가적·사회적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는 증거다.

종이 없는 녹색행정을 위한 디지털 설계 필요

종이 없는 행정이 탄소중립에 기여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지만, 이 제도가 전국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도 존재한다. 첫 번째는 지역 간, 기관 간 전자시스템의 불균형 문제다. 일부 지자체나 공공기관은 여전히 종이 기반 업무에 익숙하며, 디지털 시스템 도입이 더딘 경우도 있다. 두 번째는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력 소비 증가 문제다. 전자문서를 저장하고 유통하는 클라우드 서버, 데이터센터 운영은 전력을 많이 소모하며, 이 또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따라서 종이 절감의 긍정 효과가 IT 시스템 운영의 환경 부하를 상쇄할 수 있도록, 에너지 효율적인 시스템 설계와 그린 데이터센터 구축이 병행되어야 한다. 세 번째는 사용자 중심의 디지털 행정 설계다. 정보 소외계층, 특히 고령자나 장애인 등이 전자문서 사용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접근성과 사용성을 고려한 시스템 개발이 필요하다. 정부는 향후 행정서비스 평가 지표에 종이 문서 감축률과 탄소 저감량을 포함시키는 정책 검토도 진행 중이며, 장기적으로는 AI 기반 문서 자동화, 무서류 모바일 민원 서비스, 블록체인 기반 투명 문서관리 체계 등이 도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종이 없는 행정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행정환경의 지속가능성과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미래의 행정은 효율과 환경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녹색 행정'으로 진화할 것이며, 이는 곧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을 높이는 근본적 변화로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