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없는 행정시대, 디지털 격차에 놓인 노년층 문제
디지털 행정, 전자문서, 모바일 민원, 전자결제… 대한민국은 지금 빠르게 종이 없는 사회로 이동 중이다. 정부는 공공서비스의 효율성과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각종 행정 절차를 전자화하고 있으며, 주민등록등본 발급, 건강보험 자격 확인, 납세 증명서 제출 등 일상 속 민원도 더 이상 종이 없이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많은 국민에게 ‘빠르고 간편한 세상’을 제공하지만, 한편으로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계층에게 새로운 장벽이 되기도 한다. 특히 노년층은 디지털 접근성과 활용 능력에서 가장 큰 취약계층으로 지목되고 있다. 고령자는 스마트폰 보급률은 점차 늘고 있지만, 여전히 기기의 사용법이나 앱 조작, 온라인 민원 처리 방법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경우가 많다. 종이 없는 사회가 진행되면 될수록 이들은 점점 행정·금융·의료·복지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서비스 소외를 경험하게 된다. 디지털 전환이 전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년층의 디지털 격차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체계적인 접근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 글에서는 디지털 사회에서 노년층이 직면한 현실과 그로 인한 문제점, 정부와 사회의 대응 전략, 그리고 우리가 함께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본다.
종이 없는 행정 디지털 전환 속 노년층의 현실
노년층이 겪고 있는 디지털 격차는 단순한 '불편함'의 문제가 아니다. 디지털 기기 사용 미숙으로 인해 공공서비스 접근 자체가 차단되는 현상이 실제로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종이 건강보험증 발급이 중단되고 모바일 건강보험 자격확인서로 대체되면서 병원에서 혼란을 겪는 고령 환자들이 늘고 있다. 또한, 정부24 앱이나 모바일 전자지갑을 통한 민원서류 발급도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에게는 접근이 불가능에 가깝다. 심지어 은행조차 ‘디지털창구 전환’을 이유로 창구 업무를 축소하고 있으며, 키오스크와 자동화 시스템으로 교체되는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노년층의 일상은 ‘기기를 모르면 이용할 수 없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행정뿐 아니라 사회복지 서비스, 교통(무인 버스정류장), 금융(모바일 뱅킹), 의료(온라인 진료예약), 문화(인터넷 티켓 예매) 등 거의 모든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70세 이상 고령자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일반 성인의 60% 수준에 불과하며, 디지털 이용 역량도 평균 이하로 평가되었다. 단순한 사용 능력뿐 아니라, ‘두려움’과 ‘거부감’이라는 심리적 장벽 또한 노년층 디지털 소외의 핵심 요인이다. 결국 이 문제는 정보의 불평등을 넘어, 행정과 사회 전반에서의 구조적 소외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종이 없는 행정을 위한 정부와 사회의 대응 전략
디지털 격차 해소는 단순히 기기를 제공하거나 강의 몇 회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이를 인식하고 다양한 대응책을 추진 중이다. 우선, 디지털 역량강화 교육이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디지털배움터’ 사업을 통해 60세 이상 고령자를 위한 스마트폰 사용법, 키오스크 이용법, 공공앱 활용법 등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있다. 각 지자체도 복지관, 도서관, 주민센터 등에 ‘디지털 도우미’를 배치해 1:1 맞춤형 디지털 상담을 제공 중이다. 또한 일부 공공기관은 고령자를 위한 ‘전환기 이중서비스’를 유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종이 인감증명서와 모바일 인감증명서가 동시에 발급되도록 하거나, 무인 민원발급기 사용이 어려운 고령자에게는 창구 지원인력이 안내해주는 방식이다. 민간 기업도 협력에 나서고 있다. 일부 은행은 고령 고객 전용 창구를 운영하며, KT·SKT 등 통신사는 ‘시니어 스마트폰’과 관련 요금제를 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응은 아직 일부 지역, 일부 계층에 국한되어 있으며, 전면적이고 통합적인 전략으로는 부족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도움’이 아니라, 노년층의 디지털 주체화를 돕는 구조다. 디지털 사회 속에서 고령자 스스로가 ‘소비자’가 아닌 ‘사용자’로서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 → 경험 → 제도 설계 → 피드백으로 이어지는 지속가능한 지원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모두를 위한 종이 없는 행정 디지털 사회로 가는 길
디지털 사회는 속도가 빠르다. 하지만 그 속도만큼 포용성과 형평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기술은 단절의 도구가 될 수 있다. 특히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노년층의 디지털 소외는 단순한 기술 격차를 넘어 사회적 갈등으로 확산될 위험이 있다. 앞으로는 디지털 정책을 설계할 때 반드시 ‘노년층 시각’을 포함해야 하며, 제도 도입 이전에 사전 시범 운영을 통해 정보취약계층의 피드백을 반영하는 프로세스가 정착되어야 한다. 또한 디지털 서비스 개발 단계에서부터 사용자 중심의 UX/UI 설계, 음성 안내 시스템, 고령자 전용 모드 등 접근성을 보장하는 기술 표준도 필수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교육 역시 단기 강좌보다 생활 밀착형, 반복 학습형 프로그램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지역 밀착형 커뮤니티 기반의 ‘디지털 케어센터’ 같은 실질적 지원 공간이 확충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디지털 격차 문제를 ‘개인의 능력 부족’으로 볼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공공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종이 없는 사회로 나아가는 길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지만, 그 길이 모두에게 열린 길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부터 노년층을 위한 디지털 포용 정책이 실천되어야 한다. 기술은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하며, 디지털 전환의 진정한 성공은 ‘누구도 뒤처지지 않는 것’으로 완성된다.